농지에서는 농사를, 유휴부지에는 태양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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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58 농촌 재생에너지 사업의 활로
지난해 10월 31일 평택~제천고속도로 진천나들목(IC) 방면 비탈면의 태양광 발전시설 ‘죽현 4호기’ 현장.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의 고속도로 아래쪽 5617제곱미터(㎡) 부지에 검푸른색 태양광 패널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고속도로 위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드론을 띄워 사진을 찍어보니 4차선 고속도로와 좁다란 마을 길 사이 빈 곳을 메운 패널들이 매끈한 모습을 드러낸다.
잡초 무성하던 비탈에서 700가구 쓸 전기 생산
원래 이 땅은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국유지로 잡초만 무성했다. 2018년 나무를 베는 등의 큰 수고 없이 손쉽게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시설용량은 667킬로와트(KW)다. 300미터(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죽현 1호기’의 발전용량 745KW를 합하면 1.4메가와트(MW) 규모다. 여기서 연간 생산하는 전력은 약 700가구가 1년 내내 쓰는 전기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는 이곳의 관리는 발전시행사와 계약한 안전관리대행업체가 맡고 있다.
고속도로 아래 버려진 비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 죽현 4호기. 잡초만 무성하던 땅에서 연간 수백 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되고 있다. 박시몬 조성우 기자
충남 아산시 옛 선장간이역 철도 부근에는 자전거도로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섰다. 이 부지는 2008년 장항선 철길을 직선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폐선로가 된 곳이다. 아산시는 2019년 민간 시행사와 협약해 아산시 방축동부터 도고면에 이르는 폐철도 10.4킬로미터(km) 구간에 폭 3m의 자전거도로를 닦았다. 또 자전거도로에 지붕을 만들어 태양광 패널 1만 8천여 개를 설치했다.
설비용량 6.5MW인 이곳에서는 연간 2만 2천여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된다. 시공업체인 아산그린에너지는 이 시설로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2800여 톤(t) 줄여 소나무 7만 8천 그루를 심은 효과를 거둔다고 설명했다. 생산된 전기는 한국중부발전에 판매된다.
충남 아산의 버려진 철길 10km를 자전거길로 만들면서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모습. 여기서 연간 2만 2천여 가구가 쓸 전기가 생산된다. 아산그린에너지 제공
농지잠식·환경파괴 없이 태양광 설비 확충
태양광 설비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산의 나무를 베는 등 환경파괴가 일어나거나 식량을 생산할 농지가 잠식되는 문제로 전국 농촌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버려진 땅, 즉 유휴부지가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도로나 철도를 새로 만들면서 방치된 예전 도로와 철도, 그리고 그 주변 땅이 대표적이다. 국가 소유이고 이미 개발된 땅이기 때문에 환경 훼손이나 주민반발 등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지난해 4월 8일 녹색연합과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이 주최한 ‘도로·철도 유휴부지를 활용한 재생에너지 확대방안’ 토론회에서 임성희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산지와 농지를 중심으로 태양광을 확충하면서 환경 훼손 등의 논란이 많았던 점을 지적했다. 그는 “도로나 철도의 남는 땅은 이미 개발이 이뤄졌기 때문에 환경 훼손 문제나 기존 용도와의 충돌 여부에서 태양광 입지에 더 적합한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전국 도로와 철도 관련한 유휴공간만 활용해도 총 975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지을 수 있다. 연간 약 138만 명이 가정용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유휴부지 태양광 사업을 2012년부터 추진해왔다.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 비탈면 등의 남는 땅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현재 운영 중인 곳이 115MW 규모이고, 2025년까지 243MW 규모로 확장할 계획이다. 도로공사 신재생에너지 사업개발처 남승범 차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유휴부지 태양광 발전시설로 연간 약 10.8만t의 이산화탄소가 저감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조사한 전국 도로·철도 유휴부지의 태양광 발전 잠재량. 그래프 최은솔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유휴부지 발전설비가 좀 더 빨리 확충돼야 한다고 촉구한다. 녹색연합 임성희 팀장은 같은 토론회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500기가와트(GW) 이상 필요하다”며 “조금 더 적극적인 유휴부지 태양광 발전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 태양광 설비량은 약 22GW 수준이라, 태양광만으로 보면 현재보다 22배 정도 설비가 늘어나야 한다.
허위정보가 낳은 주민 반대와 이격거리 규제
국내 태양광의 확충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은 주민 반대와 지방자치단체의 규제다. 국유지에 설치하는 유휴부지 태양광도 영향을 받은 사례가 있다. 죽현 1호, 4호에 이어 추진되던 2호와 3호는 인근 죽현마을 주민과 사업시행자 한마음에너지 사이 갈등으로 설치가 무산됐다.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소 설치로 마을 경관이 나빠지고 전자파, 빛반사, 열발생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주민투표를 거쳐 설치 반대를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2, 3호의 인허가는 취소됐다.
이런 주민 반대는 전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고, 지방자치단체들이 태양광 설비를 어렵게 만드는 ‘이격거리 규제’를 강화하는 원인이 됐다. 그러나 태양광의 환경·건강피해에 관한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미 판명됐다. 태양광의 전자파와 관련,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강종식 선임연구원은 2012년 한국전파학회지에 낸 보고서에서 태양광 패널의 전자파 검출량이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인체 노출 기준의 20% 이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빛반사와 관련,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강기환 책임연구원은 2015년 ‘태양광발전시스템 고장과 민원 발생 유형’이라는 논문에서 “태양광 모듈에서 발생되는 반사율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의 외장 유리 또는 비닐하우스보다도 훨씬 적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전국의 태양광 관련 행정소송 건수가 2014년 7건에서 2019년 229건까지 늘어났을 정도로 태양광 관련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중 신규 태양광 발전시설과 주변 민가와의 거리(이격거리)를 규제한 곳도 2017년 22곳에서 2020년 128곳으로 늘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일 ‘이격거리 규제 개선방안’을 내면서 “영국, 독일, 일본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이격거리 규제가 없다”며 도로 관련 이격거리 규제를 폐지하고 화재위험성이 있는 주거지역 100m 안에서만 규제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에 권고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권고여서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태양광 설비 관련 이격거리 규제와 행정소송 건수 추이. 최은솔 기자
선진국은 유휴부지 중심으로 태양광 확충 박차
태양광 확충 속도가 느린 우리와 달리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은 농촌과 도시 모두에서 유휴부지 중심의 태양광 설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경우 지방정부가 학교의 소음 방지를 위해 방음벽을 세우면서 태양광 패널을 함께 설치했다. 또 A81 고속도로에 5.5m 높이로 지붕을 올린 태양광 패널 등 창의적 설계가 늘어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도로 방음벽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와 A81 고속도로 구간의 지붕 태양광 모습. 녹색연합 제공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규제합리화를 통해 유휴부지 태양광이 빠른 속도로 확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릴 때는 지역주민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지만, 국유지에 소규모 시설을 만들 때는 예외가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국회토론회에서 이성호 에너지전환포럼 이사는 국유지에 소규모로 발전기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주민동의가 절대적인 사업시행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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